테니스

테니스 레전드 1편 - 아서 애시(Arthur Ashe)

일상공방 2022. 1. 1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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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선수 아서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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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애시는 1943년 7월 10일생으로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을 3개나 가지고 있는 미국의 테니스 레전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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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애시는 미국 데이비스 컵 대표팀에 선발된 최초의 흑인 선수이며 윔블던, US 오픈, 호주 오픈 단식에서 

우승한 유일한 흑인 남성 선수입니다. 

그가 태어난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는 흑인 테니스 대회와 백인 테니스 대회를 엄격하게 구분했습니다. 

아서 애시는 스포츠에 큰 재능이 있었지만 백인 테니스 선수들과 경쟁하지 못해 그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버지니아 리치몬드시

또한 리치몬드시는 흑인들의 실내 테니스 코트 이용을 금지하던 곳 중 하나입니다. 

이 때문에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세인트 루이스의 리처드 허들린이라는 코치가 아서 애시에게 편지를 보내 그를 더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세인트 루이스로 데려옵니다. 

리처드 허들린과 아서 애시

아서 애시는 리처드 허들린 가족과 함께 살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허들린으로부터 서브 앤 발리를 배운 아서 애시는 더욱 뛰어난 선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로비를 통해 기존에 백인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미국 학생선수권 대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미국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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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애시는 아직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을 때 바늘구멍보다 작은 틈을 실력으로 뚫고 미국을 대표한

스포츠 선수로서, 당시 많은 흑인들 및 흑인 운동선수들의 영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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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흑인 운동선수들에게 아서 애시는 불합리함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아서 애시는 당시 희망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그 업적과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테니스 코트가 현재 US오픈의 메인 코트 중 하나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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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랭킹이 정립되기 전, 당시 테니스 선수들의 세계 랭킹을 자체적으로 산정해 보도했던

The Daily Telegraph 및 World Tennis Magazine 등의 매체에서 세계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ATP 랭킹이 정립되었을 때 그의 최고 순위는 세계 2위였습니다(1976년 5월 기준) 

아서 애시

단식에서 그는 1968년 US오픈 우승, 1970년 호주 오픈 우승, 1975년 윔블던 우승, 총 3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아서 애시


그는 복식에서도 세계 15위에 오르며 1971년 프랑스 오픈 복식 우승 및 1977년 호주 오픈 복식 우승, 그리고 

1968년 US오픈 복식 준우승 및 1971년 윔블던 준우승을 이뤄냈습니다.
데이비스 컵에서는 1963년 처음 우승하였고, 1968년부터 1970년까지 3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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